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바오로 2세 (문단 편집) === 교황으로서의 활동 === ||<:> [[파일:교황 레이건.jpg|width=100%]] ||<:> [[파일:95년 교황 발티모어.jpg|width=100%]] || ||<:> [[1990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교황 ||<:> [[1995년]] [[10월]], 발티모어를 방문한 교황 || [[1980년대]] 동유럽의 반공주의 운동을 지원하며 [[냉전]] 해체의 지원적인 역할을 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1991년 냉전 종식 이후에는 세계 평화와 반전을 주창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84년]]과 [[1989년]] [[대한민국]]을 2차례 방문하였고, 재위기간 27년동안 총 129개국을 순방했다. 또한 청년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던 교황은, 1985년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청년대회를 시작으로 2002년 토론토에서 개최된 세계청년대회까지 9차례 열린 대회에 모두 참석하여 개/폐막 집사를 집전하고 청년들과 함께했다. 한편 1995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했을 때는 교황을 노린 테러범들에 의해 또 다시 '''암살'''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이 범인들은 교황이 연설하기로 했던 공원에 폭탄을 설치해 암살하려 했으나 제조 실패로 아파트에서 미리 터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들은 1999년 필리핀 방문 계획을 잡고 있던 교황을 다시 암살하려고 시도했으나, 방문 직전 교황이 계획을 취소하면서 실현되지 못하였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수호하고자 노력했던 교황으로서, 종교와의 대화를 촉구하고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추구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전통 가톨릭]] 신앙의 수호를 고수하며 교도권에서 멀어졌던 [[성 비오 10세회]]와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으나, 1988년 설립자인 마르셸 르페브르 대주교가 자신의 윤허 없이 주교를 성성하자 결국 파문시켰다. 그러나 교황은 종교와의 대화 위원회에 성 비오 10세회와의 교회 일치를 위한 위원회를 별도 설치해 계속해서 그들과 대화했고 결국 요한 바오로 2세 사망 4년 뒤인 2009년, 르페브르 대주교가 서품한 주교 4명의 파문이 철회되고 6년 뒤인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칙령으로 성 비오 10세회 소속 사제의 고해성사와 혼인성사가 교회법상 합법적인 권위를 얻으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2000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중세시대 가톨릭 교회의 중세시대 범죄인 [[마녀사냥]], [[면벌부]], 루터파 탄압 등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또한 [[1990년]] [[걸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찾으라는 메세지를 발표하는 등 재임 기간 내내 전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2000년]]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는 직접 축전을 보내고 바티칸으로 초청하여 회담을 가졌다. 교황은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직접 전두환에게 선처를 탄원하는 성명서를 보낸 적이 있다. ||<:> [[파일:카스트로 교황.jpg|width=100%]] || ||<:> [[1998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서기장의 영접을 받는 교황 ||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교황의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 [[파킨슨병]] 판정을 받으면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만성적인 근육떨림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허약해지면서 보행기구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의 파킨슨병을 두고 지난 1981년 피격 사건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또한 맹장염, 요로결석, 악성종양, 패혈성 쇼크 등 여러 질병을 달고 살면서 수 차례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oronto 2002.jpg|width=100%]]}}} || || 2002년,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의 개막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4년 교황 성탄미사.jpg|width=100%]]}}} || || 2004년 12월 25일, 교황이 생전 '''마지막'''으로 집전한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병세가 더욱 심각해져 해외순방이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보행 때마다 지팡이와 보행장치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교황은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끝까지 교황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으며, [[2002년]]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고 [[오상의 성 비오]], [[테레사 수녀]]의 시복/시성식을 주재하는 등 고된 스케줄을 이어갔다. [[2004년]] [[12월 25일]], 교황이 생전 마지막으로 주재한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중에는 한국에서 온 화동들이 한복을 입고 교황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